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영화 (문단 편집) === 주연급 여자배우 === (대만출신은 ★) * [[관지림]] (Rosamund Kwan, 1962. 9. 24. ~) * [[구숙정]] (Chingmay Yau, 1968. 5. 16. ~) 1987년 미스 홍콩 선발 대회에 출연한 이후로 연예계 데뷔. 깜찍한 얼굴로 한국에도 인기가 많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보일 듯 말 듯 하면서 결정적인(...) 부위는 안 보여주는 배우로 유명했다. 퓨전 혼합 에로물 <적나고양> 시리즈, <외전 혜옥란>에서 선정적인 모습으로 포스터를 찍었는데, 피시통신 시절에는 여기에 낚여서 본편을 대여해 보고 노출이 없어서(어깨와 허벅지까지가 한계...) 실망했다는 한국 남성 네티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어쨌든 결정적인 노출을 극히 자제한 보람이 있는 듯, 재벌 패션 디자이너와 결혼 후 은퇴해 사모님으로 잘 살고 계신다고... * [[매염방]] (Anita Mui, 1963. 10. 10. ~ 2003. 12. 30.) 가수 출신으로 [[장국영]], [[알란탐]]과 함께 1980년대 홍콩에서 무적 3인방으로 불렸다. 대부분의 홍콩 가수들이 그렇듯이 배우를 겸업했고, 가창력도 뛰어나지만 연기력도 뛰어나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에 개봉된 것중에 유명한 것은 [[영웅본색 3]], 성룡의 미라클(1989), 91 신조협려(1991), 홍번구(1995), 이연걸의 영웅이다. 자궁경부암으로 안타깝게 4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 [[양자경]] (Michelle Yeoh, 말레이시아 출신 1962. 8. 6. ~) 1980년대 [[예스 마담]] 시리즈 등 액션영화에서 활약한 여배우로 [[중화권]]에서 유명했으며, [[와호장룡]]의 성공으로 서구권에도 알려졌다. 2000년대부터는 미국 등 서구권 영화 및 TV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아시아계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양려청(양리칭) (Cynthia Khan, 1968. 12. 13. ~)★ 원래 무용을 전공하다가 후에 무술을 연마하고 액션배우로 전업하였다. 예스마담3에서 전작들 주연인 양자경 대신 출연하여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어명 Cynthia는 신시아 로스록에서 따왔다고 한다. 현재는 피트니스 사업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 양채니 (Charlie Young, 1974. 5. 23. ~)★ 1992년에 가수로 데뷔했다.1994년의 서극의 양축(梁祝)에 출연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1994-97년 사이 홍콩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나 갑자기 은퇴. 하지만 2004년 복귀해서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5에 출연했다. 19년이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싱가포르 출신 남성과 결혼했다. 현재도 활동중이다. * 양천화 (楊千嬅, Miriam Yeung, 1974. 2. 3. ~) 가수 겸 배우. 한국에서는 흥행한 영화가 없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광동어 가수로는 전설급이며 홍콩에서는 "가요의 여왕"(歌后)이라고 불린다. 한국에서 그나마 알려진 작품으로는 옴니버스영화 <쓰리 몬스터>(2004)의 "만두"편이다. 간호학교를 졸업한 정규 간호사(RN)이기도 하며, 책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 엽옥경 (Veronica Yip, 1966. 2. 12. ~) 1985년 미스 아시아 대회에서 2등을 하여 데뷔. 데뷔 초반 aTV 전속 탤런트로 계약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aTV와의 계약 종료 후, 1991년 정불자금(情不自禁)을 시작으로 한 에로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돌파구를 뚫는다. 1995년까지 여러 편의 에로 영화에 출연했었고 1993년 부터 정극에도 도전하여 '에로배우 출신의 여배우'라는 한계를 딛고 [[금마장]],[[금상장]]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연기변신에도 성공했다. 이후 슈퍼마켓 체인을 경영하는 부유한 미국계 중국인 사업가와 결혼하고 연예계를 은퇴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 [[글로리아 입|엽온의]] (Gloria Yip, 1973. 1. 13. ~) 전성기에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일본 활동명인 "글로리아 입"으로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역배우로 데뷔했는데, 특유의 깜찍한 모습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아직 어렸기 때문에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활동했으며, 원표의 <공작왕>, 성룡의 <미라클>에 나온다. 홍콩재벌과 결혼을 비교적 일찍(1995)하고 은퇴를 했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 ~~글로리아 입같은 미녀를 와이프로 두고 바람을 피울 수 있나?~~ 이혼 하면서 상당히 힘든 세월을 보냈다.(아이 둘은 글로리아가 맡았다고 한다.) 동료 배우 증지위가 연예계 복귀를 도와주었지만, 청순깜찍 이미지를 이혼녀가 써먹을 수는 없는데다가, 이미 이혼하면서 3류 찌라시들의 단골소재가 되었기 때문에 연기복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현재는 연기학원을 경영한다고 하며, 최근에 보도되는 사진은 세월과 풍파를 겪은 미중년의 모습이다. 여담이지만 [[리키오]]의 향일합작 실사영화판에도 얼굴을 내민적이 있었다.[* 참고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고어물|굉장히 피터지는 영화]]다.(...)] 주인공의 연인 캐릭터 정도의 위치로 회상씬에서 나오는 정도의 카메오 출연이었지만. 물론 그 장면은 작중에서 얼마 안되는 평화로운(?) 장면이다. 음반도 냈다. 그 중에는 영어가사로만 구성된 서울 앨범도 있다. 알란 탐과 함께 한국 한자 발음보다는 영어 이름이 더 친숙한 몇 안 되는 배우. * [[엽천문]] (Sally Yeh, 1961. 9. 30. ~) ★[* 사실 성에 쓰이는 葉은 '섭'으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홍콩 배우에서는 이런 오독이 한국에서 굳어졌으므로 여기선 모두 "엽"으로 쓴다.] * 오천련 (Jacklyn Wu, 1968. 7. 3. ~) ★ [[천장지구]][* 원제는 천약유정(天若有情)이다.]에 유덕화와 함께 공연해 유명해졌고, 1997년에는 언픽스라는 망작 한국영화에 한재석과 나오기도 했다. 대만 국립예술학원에서 연기를 정통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연기력도 탄탄하며, [[이안(영화 감독)|이안]] 감독의 <음식남녀>에서도 열연을 펼쳤다. 2000년대 이후로는 거의 활동이 없다. 결혼도 2007년 일반인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왕페이|왕비]] (왕정문) (Faye Wong, 1969. 8. 8. ~) 대륙 출신. 가수로는 전설급이지만, 배우로 뜬 것은 [[중경삼림]]의 식당 종업원 역 때문이었다. 연기력이 매우 좋음에도 불구하고 출연한 영화는 5편에 불과한데, 모두 홍콩 영화이다. * [[왕조현]] (Joey Wong, 1967. 1. 31. ~) ★ * 원결영(원영)[* 2007년 개명하여 가운데 결자를 뺴고 원영으로 바꾸었다.] (Fennie Yuen, 1969. 9. 15. ~) 1985년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는데, 무려 "개심소녀조(開心少女组)"[* 한국말로 바꾸면 '명랑소녀대' 정도. 일본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나 우리나라의 걸그룹 [[애프터스쿨]]처럼 입학-졸업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 활동했으며, 그룹을 거쳐한 가수나 여배우들이 좀 있다. 장학우의 부인인 나미미와 아래 설명할 이려진도 여기 출신.]라고 불리던 [[걸그룹]] 출신이다. 드라마 [[소오강호]]와 [[동방불패]]에도 출연해서 무협팬들에게는 특히 인기가 있지만. [[첩혈가두]]에서는 신혼에 남편이 실종된 와중에서도 임신했던 아이를 낳아 홀로 키우던 양조위의 조강지처로 나온다. 동방불패에선 남봉황 역할을 맡아 관지림과 함께 출연했다. 외모는 매우 청순하고 고전적인데, 사생활은 이래저래 스캔들이 많았으며, 양성애자라고 한다. * 원영의 (Anita Yuen, 1971. 9. 4. ~) 1990년 미스 홍콩 출신. 1991년에 TV데뷔를 했고, 1993년 '아비와 아기'로 금상장 영화제 신인상을,1994년 '신불요정'과 1995년 [[금지옥엽]]으로 2회 연속 [[금상장]]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주성치]]의 [[007 북경특급]], [[성룡의 썬더볼트]]에도 나온다. 최근에 [[이민호(1987)|이민호]]와 [[수지(1994)|수지]]가 사귄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SNS에 남겨 화제가 된 바 있다. 물론 이 분은 유부녀다. * [[이가흔]] (李嘉欣, Michelle Reis, 1970. 6. 20. ~) [[마카오]] 출신으로, 아버지가 포르투갈계인 혼혈이다. 영화 동방불패에 영호충의 사매로 출연했다. 동방불패와 타락천사 등 인지도를 높인 작품은 몇 안되지만 화려한 미모가 화제가 되어 많은 CF를 찍었다. 한류 배우로 비유하면 [[한채영]] 정도 위치였던 여배우. 2008년 재벌과 결혼하면서 은퇴했다. 국내에서는 [[타락천사(영화)|타락천사]]를 통해 인기를 얻었고 이 때의 신비롭고 퇴폐적인 분위로만 기억되는 여배우이지만 [[중화권]]에서는 상습적인 가정파탄 행위로 [[관지림]]과 함께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은 여배우이기도 한데, 홍콩의 거부 중 한 명인 류란웅의 이혼은 이가흔과의 불륜 때문이었고[* 그런데 류란웅은 사실 이가흔을 만나기 전에 [[관지림]]과도 불륜한 전적이 있다. 즉 완전히 상습범.[[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151112000915|#]]], 또 다른 거부인 팡웨이런과도 불륜해 이혼 직전까지 갔으나 남자 쪽 부모의 극렬 반대와 부인의 용서로 팡웨이런은 겨우 이혼을 면할 수 있었다.[[https://entertain.v.daum.net/v/20071029084807915|기사1]][[http://weeklyhk.dadamedia.net/m/view.php?idx=12707&mcode=m308jo7&page=64|기사2]] * 이여진 (이려진) (Loletta Lee, 1966. 1. 8. ~) 1980년대 중반에 데뷔. 원래는 [[아역배우]]부터 시작했고, 1985년에 장국영과 로맨틱 코메디물 위니종정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뜨지 못하자 1987년부터는 ~~생활고 때문인지~~ 에로물에 주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강시숙숙 출연했고 한국에 에로 배우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알려진 것은 1994년에 비디오로 출시된 밀도성숙시. 베이글형 스타일인데다가 연기력도 뛰어나다. 이어 서기와 함께 옥보단2(1996)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에로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만, 결혼(1996년, 2000년 이혼) 이후 에로물에서 손을 떼고, 다시 주류 영화계로 돌아와 1999년 출연한 사회물 <천언만어(千言萬語)>에서는 금마장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 이새봉 (李賽鳳, Moon Lee, 1965. 2.14. ~) 귀여운 이미지의 배우로 중간에 포리스마담 시리즈로 이미지를 변신하여 양자경, 호혜중과 함께 액션 여배우로 유명해졌다. 원래 홍콩 출신이지만 대만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1980년에 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던 중 방송국 프로듀서에게 현장에서 스카웃 되어 대지온정(大地恩情)이란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예계 데뷔, 귀여운 외모로 아이돌 배우로 활약하였으며 1981년에는 교차연단(交叉零蛋)으로 영화에도 출연하기 시작한다. 촉산, 성룡의 [[프로텍터]], [[강시선생]] 등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이전부터 살짝 [[중국권법|쿵푸]] [[액션]]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이돌 배우가 나름 노력하네"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1987년작 '''포'''리스 마담(원제 천사행동<天使行動>)에서 본격적인 액션 배우로 변신을 시도하며 이후 홍콩 4대 여무타성[* 武打星. 타격 액션을 많이하는 배우, 즉 여성 액션배우라는 뜻. 양자경-양리칭-호혜중에 이새봉을 합해 4명이다.]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대작 액션영화에는 별로 출연하지 않고 저예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만 활약하면서 지명도 면에선 많이 떨어진 편. 1989년 <엽마군영> 촬영 중 폭파 촬영신에서 타이밍이 어긋나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으나 회복된 듯 이후 계속 촬영했다. 대다수의 홍콩 배우처럼 결혼하고 은퇴했으나,[* 활동 자체는 1999년까지 근근히 해 왔고, 2008년에도 출연작이 있긴 있다.] 2007년 근친상간성[* 정확히는 20세 연하의 수양아들과의 관계...당사자들은 극구 부인했다.] 불륜 사건으로 이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 [[임청하]] (Brigitte Lin, 1954. 11. 3. ~)★ * [[장만옥]] (Maggie Cheung, 1964. 9. 20. ~) * [[장백지]] (Cecilia Cheung, 1980. 5. 24. ~) 데뷔 초기에 임청하 닮은 얼굴로 유명했다. [[최민식]]과 함께 한국영화 [[파이란]]에 출연.아버지가 삼합회의 간부급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런 아버지의 비호를 받아 그런대로 홍콩의 주연급 여배우로 뜨나 했더니, 결혼전에 호색한 [[진관희]]와 사귄게 문제. 결국은 동료배우 사정봉과 결혼했지만, 진관희와의 사생활을 담은 사진 유출로 이혼했고, 그 다음은 작품 활동이 매우 드물어졌다. 오랜만에 2016년작 out of control에 BIGBANG의 [[T.O.P]]과 동시 출연했다. * 장애가 (張艾嘉, Sylvia Chang, 1953. 7. 21. ~)★ 대만 출신으로, 홍콩에서 가수, 배우로 활동했다. 현재도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 중.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DJ를 하다가 홍콩으로 건너가 영화계에 데뷔했다. 첫 작품은 왕우와 허관걸이 주연한 <용호금강(1973)>. 1970년대는 주로 무협물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미국의 한국전쟁 시트콤 [[M.A.S.H.]]에도 한국인(...) "순이"로 잠시 출연하기도 했다. 1983년 [[최가박당]]에 왈가닥 여형사로 출연하여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 이어 감독으로 데뷔하여 <최애>(1986) 로 큰 호평을 받고 중화권의 여러 영화상을 받았는데, 이후 도래한 홍콩 영화의 전성기인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배우보다는 감독 또는 각본가로 일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3년 [[추자현]]이 출연한 중국 드라마 <화려상반족>(화려한 샐러리맨)의 각본을 맡기도 했고, 이것이 영화화된 2015년 두기봉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는 주윤발, [[탕웨이]]와 직접 출연.[* 1980년대 초반의 홍콩 영화계 여주로서는 같은 대만 출신인 임청하의 대항마였다.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한창이던 80년대는 이미 30대 중반이었고, 연기보다는 연출이나 각본 쪽으로 돌았기 때문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히트를 친 <최가박당>에서도 터프한 모습으로 일관하여 팬이 생길 여지는 거의 없었다.(70년대 출연한 영화를 보면 묘하게 [[김세정|세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닮았다.) 최근 출연 작품을 보면 중후한 카리스마의 미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연급 홍콩 여배우들은 대부분 재벌과 결혼해서 은퇴하거나 스캔들로 커리어를 접곤 하는데, 그 와중에서 모범적인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끊임없이 커리어를 쌓아올려 홍콩 여배우중에서는 영화계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한국 팬들에겐 주윤발이 비운의 모터사이클 레이서로 출연했던 영화 우견아랑 속 여주인공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2022년 제59회 금마장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종려시 (Christy Chung, 1970. 9. 19. ~)[* 한국 한자음으로 종려시가 아니라 종려제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緹(붉은비단 제)는 한국에서 잘 안쓰이는 글자이기 때문에 처음에 번역을 잘못한 듯 하다.] 캐나다 출생의 중국-베트남 혼혈. 캐나다 화교 미녀 대회에서 우승 후, 1991년 홍콩에서 열린 미스 차이니스 인터네셔널에 참가했다. 이것으로 홍콩 연예계에 데뷔해서 [[이연걸]]이 나오는 보디가드(1994)에 출연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누드집을 내는 등, 섹시 콘셉트로 나오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태국영화 <잔다라>에서 엄청난 노출 연기를 했다. 2003년 결혼했다가 2010년 이혼했으나, 한때 [[신현준]]과 열애중이라는 뜬소문이 돌기도 했다. 2016년 12살 연하인 중국 가수 장륜석과 재혼했다. * 종초홍 (Cherie Chung, 1960. 2. 16. ~) 1979년 미스 홍콩 대회에서 3등을 하여 연예계로 데뷔했다. 홍콩의 마릴린 먼로로 불리우며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장만옥, 임청하와 함께 중화권 3대 여배우로 꼽혔다. 한국에 소개된 작품은 홍금보가 감독한 [[오복성]](1983), 황태래 감독의 귀신랑(1986), 장완정 감독의 가을날의 동화(1987), 은퇴작인 오우삼의 종횡사해(1991), 이외에도 엽응계획이나 마담갱 같은 영화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오복성을 제외하면 홍콩영화 전성기 이후에 개봉된 영화들이 많아서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홍콩 광고재벌 주가정과 결혼하면서 은퇴했는데, 안타깝게도 2007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해서 과부가 되었다. 은퇴 후 언론에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으로 알려지는 동정을 보면 역시 미중년으로 살고 있으며, 간간히 주윤발[* 주윤발과 많은 영화를 함께 했다. 순성마, 호월적고사, 가을날의 동화, 귀신랑, 타이거맨, 종횡사해 등], 장만옥과 같은 과거 동료배우와 만난다고 한다. 주윤발과 함께했던 작품 중에 <가을날의 동화>가 [[첨밀밀]]과 더불어 홍콩 멜로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가을날의 동화>는 한류 드라마 [[가을동화]]의 제목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임창정]]의 <슬픈 혼잣말> 뮤직비디오에서 오마주 되었다. * [[주가령]] (Valerie Chow, 1970. 12.16. ~) 미스 홍콩 출신으로 170cm를 웃도는 훤칠한 키에 오직 그 미모만으로 배우가 된 인물이다. 미모 때문에 배우가 된 탓에 거의 대부분 색기담당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중경삼림|임청하의 은퇴작]]이 주가령한테는 데뷔작이다. * [[주인(배우)|주인]] (Athena Chu, 1971. 10. 25. ~) 홍콩예술학원(단과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학생시절에는 아동용 프로그램 <번개 팩시밀리>의 진행자로 데뷔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TVB]] 방송국의 드라마에 여러 편 출연하는 동시에 [[주성치]]의 [[도학위룡|도학위룡 2]]에 출연하면서 영화계로 진입했다. 이를 계기로 주성치와 사귀기 시작했으나 <서유기> 촬영 중 막문위와 양다리를 걸친 [[주성치]]와 갈라졌다. 이후 주성치를 공개적으로 디스했으며, 여러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1998년부터 그룹 비욘드의 가수 겸 배우인 황관중(黃貫中)과 연애를 시작하여 2012년 혼전 임신을 했고, 그 길로 결혼을 해서 2세를 출산했다. * 진혜림 (Kelly Chen, 1972. 9. 13. ~) 아시아의 디바(중국어로 亞洲天后)로 불리는 진혜림은 파슨스 디자인 학교 출신으로, 홍콩에서는 영화 배우보다는 정수문과 함께 여가수로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지한파 연예인이다.(댄스가수로도 유명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장르에 출연했지만, <친니친니>와 같은 주로 로맨틱 영화로 인기를 끌었다.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무간도]]와 [[무간도 III: 종극무간|무간도 3]]에서 정신과 의사 이심아 역으로 출연했으며, 동경공략과 같은 액션물에도 간간히 출연한 바 있다. [[대장금]]의 ost 오나라의 중국어 버전인 희망(希望)을 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연의 왕후> 등에서 주연으로도 출연하면서 가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2008년에 결혼하였다. * 혜영홍 (Kara Wai 또는 Kara Hui, 1960. 2. 2. ~) 액션물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도 연기력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배우다.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대만 금마장을 포함해 여러 영화제에서도 주연상과 조연상을 여러 번 받은 배우다. 관지림과 마찬가지로 [[만주족]]이며 [[산둥성]]이 본적인데, 유아일 때 [[문화대혁명]]의 박해를 피해 홍콩으로 망명했다. 망명 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으나, [[장철(1923)|장철]] 감독과 유가량 감독에 의해 픽업되어 액션물에 주로 출연했다.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 왕우가 출연하고 진가신 감독이 연출한 영화 [[무협]]에 출연하기도 했다. 2011년 [[유역비]]와 함께 출연한 천녀유혼의 프로모션을 위해 방한한 바 있다. * [[호혜중]] (Sibelle Hu, 1958. 5. 4. ~)★ [[1976년]] 대만에서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아버지가 대학 교수였고 호혜중 본인도 대만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국립타이완대학]]을 졸업[* 역사학 전공이었으며 연예계 데뷔 후인 [[1981년]]에 졸업했다.]한 고학력자 여배우이다. 데뷔 이후 청초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로 어필하면서 당시 대만의 탑 여배우였던 [[임청하]]의 인기를 넘어서는 대만의 인기 여배우로 성장했다.[* 호혜중이 데뷔해서 막 이름을 날릴 당시 임청하는 여러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같이 출연했던 유부남 배우 진한과의 불륜 스캔들을 일으켰고 이미지 변신을 위해 더 이상 경요의 작품 여주인공을 맡지 않기로 했는데 이 때문에 경요가 임청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상태였다. "내 작품으로 떴는데 은혜를 잊었다"는 식으로... 결국 임청하는 불륜녀 및 의리없는 여배우로 낙인 찍혀서 대만의 대중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은 끝에 [[1980년]],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이때 임청하를 미국까지 따라가서 위로해주고 챙겨준 게 진상림이었다고 한다.) 이후 연예계로 복귀한 임청하는 활동 무대를 대만에서 홍콩으로 완전히 옮겨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호혜중은 포스트 임청하로서 80년대 중반까지 대만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대만 활동시에는 주로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지만 [[1985년]] 홍콩 영화계로 진출해서 [[복성고조]]의 여형사 패왕화 역으로 유명해진 이후에는 무술이나 액션물에 많이 출연했다. [[복성고조]]의 스핀오프격 작품으로 [[1988년]] 예스마담류의 액션물 패왕화(한국 제목 <땡큐마담>)[* 복성고조의 조연 중의 하나인 여형사 패왕화를 주인공으로 스토리를 만든 영화.]를 찍기도 했다. [[1989년]] <엽마군영> 촬영 중 이새봉과 같이 큰 화상을 입었고 회복은 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1997년]] 안과의사 출신 정치인(홍콩 내무장관 역임) 하지평과 결혼 후에 연예계를 은퇴했다. 2003년에 정계입문을 하여 2020년대까지 [[강소성]]의 정협위원 (한국으로 치면 [[도의원]])을 하고 있다. [[http://www.jsstb.gov.cn/stkx/201901/t20190115_12131875.htm|#]]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